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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스님 ─소금보다 황금보다 소중한 ‘바로 지금’
글쓴이 : 용화사 날짜 : 2018-05-11 (금) 21:54 조회 : 10

소금보다 황금보다 소중한 ‘바로 지금’

                                  -월호스님-

 

 

지리산 쌍계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며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하게 되었다.

「계초심학인문」의 ‘초’, 「발심수행장」의 ‘발심’, 「자경문」의 ‘자경문’을 따서

제목을 붙이고 편집한 책이 『초발심자경문』이다. 말

대로 처음으로 발심한 수행자가 스스로를 경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초심자에게 팍팍 와 닿는 글귀가 그득하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든다.”  

“마음 가운데 애착을 떠남을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음을 출가라 한다.”
 “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노인은 닦지 못한다.”
 “삼 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에 재가 된다.”
 “소나무 속의 칡은 천 척을 솟아오르고, 띠풀 속의 나무는 삼 척을 면치 못한다.”

 

“있는 말 빼지 말고, 없는 말 넣지 말라” 

물론 출가 이전에 번역서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접해본 내용이었지만,

하루에 서너 줄씩 외워 바치며 한문원전으로

공부하는 맛은 완전히 색다른 것이었다.

 

더욱 큰 소득은 외우기에 몰두하다보면 자연히

마음이 몰입이 되어 번뇌 망상이 저절로 줄어듦을 체험케 된 것이다.

즉 경전암송이 그대로 수행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문공부의 맛은 행자생활을 마치고 강원에 입방해서 공부하며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강원 시절 인상 깊었던 가르침은

“있는 말 빼지 말고, 없는 말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보통 한문경전을 새길 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독해실력이 늘어나지 않는다.

맞는 대목은 계속 맞겠지만 틀린 대목은 계속 틀리게 되는 것이다.

 

명사는 물론이고 부사나 조사까지도 어김없이 따박따박 새기고 넘어가 버릇해야,

어떠한 문장을 만나든 분명하게 뜻풀이가 된다. 예컨대,

『금강경』의 서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時(시)에 長老 須菩提(장로 수보리)가 在大衆中(재대중중)이라가

卽從座起(즉종좌기)하야 偏袒右肩(편단우견)하고 右膝着地(우슬착지)하며 

 合掌恭敬(합장공경)하사 而白佛言(이백불언)하였다.”


이 대목에 대해 시중에 대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

책들의 번역 세 가지만 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바른쪽 어깨에 벗어 메고 바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2. 그때에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으며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사뢰었다.

 

3.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며

합장하고 공손히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위의 세 가지를 비교해보자면, 특히 ‘편단우견偏袒右肩’에 대한 풀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번과 2번 문장에서는 ‘편단우견’을

“웃옷을 바른쪽 어깨에 벗어 메고”, 혹은 “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메고”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3번 문장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라고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상 차이를 지니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메는” 것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은 다르다.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완전 연소하는 삶의 비결
 

여기서의 ‘편단우견’을 앞서 강조한 ‘있는 말 빼지 말고, 없

는 말 넣지 말라’는 원칙하에 새기자면 ‘치우쳐 오

른쪽 어깨를 벗어제끼고’ 라고 풀이할 수 있다.

‘치우칠 편偏, 벗어제낄 단袒, 오른쪽 우右,

어깨 견肩’을 있는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스님들이 가사를 착용할 때 왼쪽 어깨로 치우쳐 입게 되고,

자연히 오른쪽 어깨는 드러나게 된다. 옷을 오른쪽 어깨에 메는 것이 아니라

왼쪽 어깨에 메는 것이다.

오른쪽 어깨는 옷을 벗은 상태, 즉 드러난 상태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3번을 제외한 나머지는 적절한 번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한문원전 강독을 배우는 이는 반드시 이처럼 직역 위주로

학습을 해야 공부에 진전이 있다.
 

필자도 대학원에서 선禪을 전공하면서 가장 부러운 이가

한문에 능통한 분이었다. 대학원 공부는 어학공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를 비롯해서 심지어 범어, 팔리어까지 공부했지만,

결국 한문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던 것이다.

 특히 전공이 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자료는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있는 까닭이다.

 

교 또한 삼국시대로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구한말에 이르도록

한문으로 된 자료가 대다수이다. 외국에서 불교를 배워와

한국불교의 모자란 점을 보충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먼저 한국불교의 전통을 제대로 살려내는 일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필자는 강원에 입방하여 훌륭한 강사스님들을 만나 한문경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초발심자경문』부터 『화엄경』에 이르도록 차근차근 ‘있는 말 빼지 않고,

없는 말 넣지 않는’ 학습을 해나간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러한 원칙은 꼭 글공부에 있어서만 아니고,

현실생활에서도 충분히 적용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있는 사람 소홀히 대하지 말고, 없는 사람 그리워하지 말라.”
 “지금 할 수 있는 일 소홀히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라.”
 

바로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히 대하지 않고,

지금 내 주변에 없는 사람을 막연히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소홀히 대한 내 주변의 사람이,

언젠가는 다시 내 주변에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 다시 또 후회하거나 그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불완전연소를 되풀이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공통점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소금보다 황금보다 더욱 소중한 최상의 ‘금’이라고 한다.

‘지금’을 사는 것이야말로 완전 연소의 비결이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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